2/12/2010

기름 부으심, 성장의 열쇠 [빌 존슨]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은 기름 부으심을 받고 섬겨보기 전에는 결코 완전하게 형성될 수 없다. 기름 부음 받은 사역은 능력과의 만남을 가져오고 이럴 때 비로소 인격이 변화된다.

신구약 성경 모두에게는 초자연적인 일을 위한 능력의 덧입혀짐(empowering for supernatural endeavors)에 대한 위대한 예들이 가득하다. 한 가지 중요한 원리는 사울 왕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의 성령이 그에게 부어지게 되면 그가 새 사람으로 변하리라는 것이었다(삼상10:6). 기름 부으심은 그것이 흘러갈 통로를 변화시킨다. 이 약속 뒤에 중요한 두 구절이 나온다.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다.(삼상10:9)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선지자의 무리) 중에서 예언을 했다.(삼상10:10)

사울은 이스라엘이 필요로 하는 그런 왕(새 마음을 가진 왕)이 될 뿐더러,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배울(하나님께 듣고 그의 말을 선포하는 예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내게는 친한 친구 한 명이 있는데 그에게는 심각한 인격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자신과 자기 가족을 영적인 불구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에겐 여전히 강한 예언의 기름부으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역적으로 성공한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생활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 빠져있기도 하다. 내가 그의 비밀스러운 죄 때문에 그와 만났을 때 그는 깊은 슬픔에 흐느꼈다.

교회에서의 그의 영향력 있는 위치 때문에 나는 그를 훈련시켜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훈련은 개인에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지만 벌은 수치로 묶어버린다). 어떤 회사나 정부, 혹은 교회나 가정은 그 구성원을 훈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구제란 그에게 당분간 예언의 말씀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지도를 필요하다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제한을 둔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 때 나는 사울 왕에 대한 말씀과 그것이 내 친구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심히 복잡해졌다. 내가 만일 그로(기름부음이 있는) 사역을 하지못하게 한다면 그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로 다시금 예언하게 했을 때 그의 목소리에 새로운 정결함과 능력이 돌아왔다. 그가 새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는 기름부음이 있는 사역과 접촉할 때 주어진다(이 예화는 훈련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훈련은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훈련은 사랑으로 그 개인과 전체 교회에 가장 유익한 규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훈련이 길어질 때 벌이 될 수도 있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으로부터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가짜도 있다 백 달러짜리 위조지폐가 있다고 진짜 지폐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거짓되고 남용되고 팽개쳐진 은사가 있다고 해서 성령에 대한 필요가 폐기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면 성령의 은사는 꼭 필요하다.

동전은 위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만찬가지로 마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만을 복제하거나 왜곡시킨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위대한 일을 좇다가 실패하는 것을 볼 때 난 그들이 떠난 간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을 도로 집어들 마음이 있다. 밭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면 나는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다(무로함은 영적인 부주의와는 다르다. 과거 실패의 대부분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붙여준 사람들(가족과 친구를 포함하여) 에게서 멀어질 때 생겨났다. 나는 위험한 일을 추구하지만 늘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모든 관계를 보호하기위해 노력한다. 내가 믿기로 많은 사람들이 밭에 숨기운 보물을 찾기 위해 귀중한 안전지대를 내버렸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남용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경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능력의 남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했고 또 이 때문에 교회에 오점을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 안에 표적과 기사가 없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피판자들은 혹시라도 시도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재빨리 찾아낸다. 그러면서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주로 고백하면서도 명령받은 대로 은사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간과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믿음 있는 자가 있는지 찾고 계신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한 명의 협잡꾼이 있다면 수천 명의 선량한 시민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 것도 행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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