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010

믿음 –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내리는 닻(빌 존슨)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1:1)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마음의 거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이다. 믿음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의 실체를 이곳에 끌어당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할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내리는 닻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시작하여 보이는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믿음은 깨닫는 바를 실현시킨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한계 앞에 믿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대비시키고 있다(고후5:7참조). 믿음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하셨다. 언젠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라 부른 것도 그들이 일기는 분변하면서도 시대는 분변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일기보다 먼저 시대(영적인 기후와 계절)에 대해 깨닫기를 예수님께서 왜 더 바라셨는지 이유는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를 깨닫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왜 외식하는 자라 부르셨을까?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지만 단지 사용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신 특별한 은사를 지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라 부르셨다. 만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대했다고 한다면 이는 곧 모든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눈이 멀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그런 심판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거듭난다(2:8참조). 거듭나는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으로 보는 일을 가능케한다(3:3참조). 볼 수 없다면 이는 마음이 둔하고 강퍅해졌기 때문이다( 8:17-18참조). 믿음은 단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기 위해서만 의도되지 않았다. 오히려 믿음은 하나님의 가족에게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믿음은 보게 하며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둔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모든 자원과 아버지가 베푸시려는 모든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볼 수 있는 능력을 북돋기 위해 예수께서는 상세하게 가르쳐주셨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6:33). 사도 바울은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2)고 했고 또한 이렇게도 말해주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성경은 우리로 우리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두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성경 말씀 가운데 계속 반복되면서 서구적인 논리에 갇혀있는 우리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향해 회복하기를 바라는 초자연적인 세계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본 것만을 행하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셨다. 이러한 통찰력이야말로 지금 놓여있는 상태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눈먼자의 눈에 진흙을 발라 고치신 예수님의 능력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있었던 능력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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